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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_최진영 본문

시우의 일상 🐣/BOOK

구의 증명_최진영

어서오시우 2023. 5. 9.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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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구를 먹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먹었다’는 표현에 대해서 비유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표현이 역겨웠다.
그런데 그 표현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담은 구의 몸이 자꾸 너덜더널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먹었다.
담의 손을 꼭 쥐고 그녀의 방향을 가늠해주던 구의 손과 팔을 잊지 않기 위해 먹었다. 구의 배를 베고 누워 어떤 소리라도 듣고싶어서, 그를 느끼고 싶어서 그를 바라보다가 또 그를 애무하듯 핥았고 뜯어 먹었다.
처음에 담이 구를 먹는다는 것이 정말 음식을 먹듯 먹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구역질이 날 것 같고 역겹다고 느껴졌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슬프고 애처롭고 또 애절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문장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을 동원해 하나의 영화를 그려내는 것 같았다.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노마가 구와 담에게 누나랑 형은 사귀는거지? 묻자 그들은 웃었다. 그들의 관계는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 흐르는 관계였다. 이 표현 역시 소설 속에 담긴 문장 그대로였는데, 표현 하나하나가 아름다웠다.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대목들이었던 것 같다.

소설 속 담의 이야기를 빌려온 것인데,
‘우리 삶은 아름답지많은 않았다. 그러니 분명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여기서 ‘그러나’가 아닌 ‘그러니’ 라는 표현이 쓰인 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을 묻는다면 이 구절을 꼽을 것이다.
아름답지많은 않았기에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에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구는 그가 가진 불행으로 담이 불행해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렇기에 함께하고 싶었지만 함께이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그런 구에게 담은 행복하기 위해 함께이고 싶은 것이 아닌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함께 하고 싶어했다.
구는 담에게 이건 사랑이 아니야. 라고 말했다. 구가 두려워 숨는 것 같이 느껴졌다. 구는 죽는 순간에도 담을 보고싶어 했고 또 죽은 후에도 여전히 담의 곁에 있었다. 담이 구를 먹는 것을 느꼈고, 담은 구를 먹으며 너는 나를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냐고 말하며 뜯어먹었다. 그 순간에도 구가 담을 느끼고 있음을 담이 알았다면 그녀는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아니면 더욱 고통스러워 했을까..
담은 그녀만의 장례를 치루고 있었다. 야만적이고 애절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읽은 책인데, 오랜만에 끊기지 않고 완독한 책이다. 다 읽고나자 공허하고 그리운 마음이 들어 괜히 잠이 더욱 오지 않는 밤이 된 것 같다.
내가 담이었다면 구를 절대 먹지 못했을 것 같다. 그들은 이전에 죽게 된다면 자신을 먹어달라고, 그리고 자신을 잊지 말고 오래도록 살아달라고 했다. 그렇다고 진짜 먹다니.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해 총평하자면 별 5개 따위로 감히 점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굉장히 몰입감도 좋았고, 문체도 너무너무 내 취향이었으며 모든 것이 좋았던..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그런데 평소 우울감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글을 보았는데, 그에는 동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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