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고 싶었는데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 읽을 수 있는 기간? 계약 기간이 끝났는지 여튼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길래 후다닥 읽었다.. 근데 막상 다 읽고 보니 계속 읽을 수 있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천천히 읽었지 싶으면서도 아냐..그래도 덕분에 한참 읽을 책 빨리 읽을 수 있었겠지.. 했다.
SF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은 그닥 없었는데 가볍게 읽기 좋아보여 서재에 넣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사실 ‘구의 증명’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서 몰입감이 높은 책은 읽고 싶지 않았던 터이기 때문에 일부러 흥미가 없는 장르를 택한 것도 컸다.(이상하게 영화나 드라마는 SF 참 재미있게 보는 편인데.. 책은 왜이렇게 안끌리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공지능이 나날이 발전함에 따라 동반되는 사회문제와 그에 따른 인간의 종말을 그려낸 책이다. 최근 chatGPT, 구글 바드 등.. AI 산업이 확장되고 있어서 더욱 흥미 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고령화 시대에 노인들을 부양할 사람들이 부족해지며 친절과 성실만을 겸비하는 휴머노이드의 개발을 시작으로 전투용, 애완용 등 다양한 휴머노이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인간과 가깝게 개발된 휴머노이드로,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차저차해서 결국 본인이 휴머노이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휴머노이드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자연스레 인간이 멸종하게 되었다. 결말이 뭐랄까.. 현실성이 있으면서도 갑작스러워서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깔끔한 결말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만..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자연스레 곰, 호랑이 등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증가하게 되었고 숲을 걷던 주인공은 야생 곰을 만나 죽음을 앞두게 된다.
주인공은 몸에 부착된 장치를 통해 ‘달마’라는 휴머노이드에게 본인의 상태를 알려 기억을 백업시켜 네트워크에 흡수되어 영생을 누리는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인간의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점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작가의 철학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은 본인이 인간이라고 철저하게 믿을 수 있도록 인간과 같은 신체조건을 갖도록 설계되었다. 볼에 스치는 바람과 몰려오는 피곤함을 느낀다는 것. 살아있는 생명체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느끼고 이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소설의 중반부에서 어떤 사건을 통해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몸이 사라지고 그저 인간적인 요소들을 지닌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로 살아가게 되어 원하기만 한다면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자, 주인공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여겼을 때 누리던 즐거움을 잃었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있기에 살아있는 동안 더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과 또 그것으로부터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절실함과 즐거움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달마는 말했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늘 불행하다고.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낸다고.
인공지능이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기도 했고,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현재를 흘려보낸다는 말에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고 주춤하기까지 하였다.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걸까? 라는 의문이 늘 들었지만, 이 구절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언제 또 이만큼 시간이 흐른거야?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게 맞아?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는 것 자체도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두려움이 묻어나온다고 느껴져 달마의 말이 맞네. 하며 웃었다.
그러나 후회가 있기 때문에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으며 미래를 두려워하기에 흥미와 즐거움을 느낄 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제 아무리 인간적인 요소를 지닌 휴머노이드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원한다면 영생을 살 수 있고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들은 이러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결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제프리 힌턴 교수가 AI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며 10년 이상 몸담았던 구글을 퇴사하며 본인이 평생을 바쳐 한 연구에 대한 후회와 AI 개발에 규제의 필요성을 말하며 AI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어쩌면 이 책이 정말 우리의 미래를 그려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고도로 발달한 AI가 이 책을 접하게 된다면, 어떻게 평론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여튼, 킬링타임용으로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평소에 그리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기 때문에.. ⭐️⭐️⭐️